[스토리]

그래서 도대체 뭔데 메타버스

2021-12-12 19:50

서론

메타버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우리 주위를 돌고 있다. 

사전적 정의를 말하자면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마블의 팬이라면 또다른 우주를 뜻하는 멀티버스라는 개념은 익히 알고 있겠지?

 

메타버스는 사실 옛날부터 우리 주변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해를 돕기위해 조금 옛날로 돌아가보자면,  2003년 출시된 Second Life를 예로 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조금 생소할지 모르지만, 2002년대 초반 나온 이 게임은 지금의 메타버스 서비스가 모두 포함되어있다.

만남, 여행, 제작, 쇼핑, 롤플레잉, 경제, 취직, 부동산 부터 성행위…까지…

모든 것이 가능했다. 단, 아바타틀 통해서.(지금도 마찬가지)

아바타를 통해서 들어갈수 있는 가상의 세계 = 메타버스

라고 이해하면 쉬울것 같다.

 

기술의 발전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도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았고, 단순하게 PC를 통해서 아바타를 움직이는 행위만 가능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MR(혼합현실)을 구현할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고, 5G상용화화 함께 불가능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코로나 19 펜데믹 상황에 비대면, 온라인 추세가 확산된 것 또한 큰 발판이다.)

 

아바타를 조작하는 방법또한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 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실제로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서 함께 걷고, 말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 META에선 촉감을 재현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발표했으니… 더이상 불가능은 없다.

(진짜 성,,,가 가능해질수도…?) 응?

 

단순 아바타 놀이 아니야? 라고 할수도 있지만, 지금 기술의 발전이 단순 놀이로 치부 하기엔 너무 진보해버렸다.

 

플랫폼

 

국내에서는 네이버Z가 운영하는 제페토, 미국에서는 로블록스등이 대표적인 플랫폼인데,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월 1억명을 돌파했고, 제패토는 2억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왜 우리 주위엔 잘없을까?

 

사실 두 플랫폼 모두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용자 평균이 10대 80%로 지엽적인 분포를 보여주기 때문…! 30대인 내가 보기엔 두세대나 건너 뛰어야 하니…주변에서 찾을수가 없을수 밖에

 

소유권 = NFT

 

30대이상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마 NFT라는 코인이나, 주식으로 이해하기가 쉬울것 같다. 어스2라는 가상 부동산 거래 플랫폼을 들어 보았는가? 아니면 세컨 서울은? 

 

2020년 11월 위성지도 서비스인 ‘구글어스’를 기반으로 가상 부동산 거래를 시작한 어스2는 기세가 무섭게 불어나고 시장이 형성되고있다. 최근엔 코인까지 출시한다고 하니… 무서울 따름이다. 가상의 도로에 전광판을 내고 전광판에 광고를 내어주며 광고료를 받을수 있고, 부동산 임대업,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것이 가능해졌다. 

 

그럼 과거에도 있었던 메타버스가 왜 이제와서 다시 핫! 해진 것일까? 

이유는 복잡하지만 간단하다.(?) NFT기술의 발전으로 디지털 자산(아이템)에 소유권을 주장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이템을 거래한다면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이 아이템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누가 소유 하고 있는지 알 수있는 시대가 되었다. 소유권이란게 참 무섭다는게 새삼 느껴진다.

 

자 이런 소유권이 핫해진 아바타 세상에 왜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지 알수있겠는가?

 

현실 세계에서 가질수 없는 재화를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가질수 있고, 소유권도 주장할수 있다.

NFT로 제품이 가진 정보와 소유권이 특정되니 거래가 발생했을때, 가품의 위협이나, 소유권 논란을 피할수 있다.

 

제패토에서는 라이브 스트리밍에 후원도 받을수 있다고 한다.…세상이 참…빠르다.

 

돈? 그럼 누가 뛰어들어? 대기업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은 종이에서 신문, TV, 온라인, 소셜미디어를 거쳐 다음으로 갈 곳을 찾고 있다. 다음 정착지가 유력한곳은 ? 바로 메타버스 플랫폼. 앞으로 몇년뒤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을 하게될 지금의 10대들을 타겟으로 열심히 마케팅을 펼칠 장소인것이다. 메타버스 관련 성장률은 43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타야할까?

 

메타버스에 뛰어든 몇몇 브랜드를 살펴보자  

나이키는 로블록스에 NIKELAND를 만들어 배포했다. 나이키 본사의 모습을 빼닮은 메타버스 세상안에서 이용자들은 작은 미니게임을 즐길수 있고, 아바타에게 나이키의 스페셜 제품들을 입힐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뉴욕의 House of Innovation 센터에서 로블록스 내에서 즐겼던 경험들을 현실에서 체험할수 있게 만들겠다고 한다.  

 

아디다스는 인기 NFT 컬렉션 Bored Ape Yacht Club과 협업을 발표했다. 아디다스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진출해야할때라고 말하며 메타버스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임을 나타냈다. 또한 미국 가상 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와 협력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는데, NFT마켓 플레이스에서 독자적인 NFT컬렉션을 발매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구찌는 제페토와 협업하여 3D월드 맵을 정식 런칭했다. 구찌의 가상 빌라에서 자신의 아바타에 구찌 신상 패션 아이템들을 착용해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맵에서의 활동을 통해 구찌 아이템들을 얻을수 있었다고 하는데, 현실이나 메타버스나 명품은 명품인 것 같다.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는 실제맴버와 그들의 아바타로 구성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메타버스의 세계관가 현실 세계관의 ….조금 이해하기는 힘드나, 쨋든 지금은 낯선 콘셉이겠지만, 점점 시대상에 걸맞다는 평이 전해지고 있는 상황. 

 

루이비통은 세계적인 인기게임 리그오브레전드 (LOL)과 협업하여 스킨과 실제 컬렉션 제품들을 내놓았다. 스킨이 메타버스가 아니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지금까지 위에서 말한것 모두 스킨이라고…말할수 밖에 없는것 아닌가…? 

 

포트나이트는 트래비스 스캇과 가상 콘서트를 개최해 총 45분 공연으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2019년 스캇의 투어 총 매출이 170만 달러였다고 하던데, OMG. 이런 식의 공연이라면 얼마전 있었던 비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결론

돈이 되는 시장이라고들 한다. NFT기술을 업고 또다른 세계가 생겨나는것은 막을 수없는 것으로 보인다.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투자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법적인 문제나, 가상화폐가 현금화 될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실에서 드로우로 당첨되는 신발의 감동과 나의 아바타가 신는 신발이 당첨되는 것 그 두가지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겠지? 물론 아바타가 당첨되면 현실의 우리집에도 같은 물건이 배송되는 그런 일들이 펼쳐지길 원하는 것이겠지만, 아직은 이렇게 열광하기에는 많이 부족해보이는 시장이기도 하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그래픽이라고 사람 눈으로 직접 보는것과는 다르기에… 2000년대 잠시 불었던 아바타 열풍과 지금은 기술적으로 많이 달라지긴했다만… 기술의 발전이 아직은 조금 미흡해보이기도 한다. 어떤식으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과연 근 미래의 직접적인 시장이 될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바타가 연애하는거랑 내가 연애하는거랑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할수 있을까? 

으흠…

오늘은 터보의 사이버러버를 듣고 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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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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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l was here
11월 29일 7시에 일어나 어느때처럼 인스타로 놓친 소식이 없는지 보던 그때, 믿을 수 없는 포스팅들을 보았다. 아침잠이 확 달아나는 순간. 약 3일간은 조금 가슴이 먹먹했던 것 같다. 야속하지만, 버질 관련 제품들의 가격은 폭등했고,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물론 가격에 대한 글은 오늘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니까. 그는 단순한 패션 디자이너로 기억되지 않을 것 같다. 패션계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크리에이터였기 때문이겠지. 유명인의 부고 소식을 유려한 글로 표현해내는 The New York Times 트위터는 버질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그를 표현했다. “Virgil Abloh, the barrier-breaking Black designer”장벽을 허문 흑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그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과연 어떤 장벽들을 허물었는지 보자.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짧은 그의 역사는 깊은 울림을 주기에. DONDA칸예와의 우연한(?)만남으로 2009년 명품 브랜드 Fendi에서 함께 인턴 생활을 하며, 많은 교감을 이루었던 것 같다. 이후 칸예의 에이전시 DONDA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차지한 뒤, 2011년 Kanye 와 Jay Z의 Watch The Throne 아트 디렉터로서 그의 재능을 표출한다. 2012년 그래미 어워즈 Best Recording Package 부분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은 그의 아트 디렉팅 능력이 벌서 완성단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Pyrex Vision2012년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런칭한다. 모두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미국의 Champion 브랜드의 후드, 반팔, 져지, 쇼츠와 같은 기본 제품군과 Ralph Rauren의 럭비 라인 셔츠를 염가에 구입해 독특한 나염과 라벨을 새겨 제품들은 생산했다. 염가로 샀지만, 판매가격은 550달러 선이었던…웃픈… 제품이었고, 당시 패션계는 이런 그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기존 패션계를 비웃는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1년이 채 가지 않고 회사는 문을 닫는다. 상업적 기업이라기 보다는 예술적 실험을 의도했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미국의 내열 유리 식기 회사 Pyrex와의 소송도 한 몫 한 것 같다는 의견도…크흠그의 옷에 매번 새겨진 PYREX와 숫자 23!, PYREX의 뜻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23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아는 마사장님을 표현하는 숫자가 맞다고 한다. 이때부터 버질은 조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던 것 같다. OFF-White2013년 OFF-White가 설립된다. 오프화이트를 인터넷에 서치해보면 고급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라 소개된다. 고급 스트릿웨어라니, 거기다 본사는 이탈리아 밀라노. 기존의 관행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첫 출발이었다 오프화이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프화이트의 철학.“Defining the grey area between black and white as the color Off-White”“흑과 백, 그 사이의 회색 영역을 오프 화이트라 정의한다.” 이라는 한 문장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영역 중간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 버질 아블로의 브랜드. 오프화이트는 이후 파격적인 행보로 스트릿 패션계의 하이앤드 포지션을 차지하며 씬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오프화이트 이후로부터 버질은 점점 디자이너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2015년 LVMH Prize의 최종 후보중 한명으로 거론되었고 (유일한 미국인 디자이너). 2017년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에서 어반 럭스상을 수상 또한 GQ에서 올해의 국제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7년 우리에게 가장 진한 기억을 주는 그 컬렉션 The Ten이 탄생한다. 물론 나이키의 상징과 같은 10가지 제품으로 이루어진 컬렉션이고,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오프화이트였지만, 당시는 조금 생소했을 수도 있다. 이상한 케이블 타이와 헬베티카 폰트의 굵은 대문자 레터링, 그리고 큰 따옴표는 조금 생소했다. 스니커즈 씬은 반응했고, 결과는 미친 대성공. 매장 앞에 도열한 스니커 매니아들을 아직도 난 기억한다.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줄서기 이벤트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인식시킨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다. 초기엔 주춤했던 리셀가가 하늘로 고공행진… 이후 이케아와 에비앙, 바이레도, 리모와 등등…(심지어 모엣 샹동까지) 엄청난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선보였고, 거의 대부분 모든 것들은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당시 기존 창조물에 3%의 변화만 줘 새 디자인을 만든다는 3%접근법을 소개하고 전파하며 논란이 되었지만, 그 3%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변화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Louis Vuitton2018년 3월 25일 드디어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 일이 일어난다. Louis Vuitton의 남성복 레디웨어 라인의 아트 디렉터로 임명되어 루이비통의 지휘를 맡은 몇안되는 흑인 디자이너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8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버질 아블로의 데뷔 런웨이에서 칸예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을 잊지 못하는 장면 중에 하나이다. 이후 약 3년동안 버질이 여러 장르의 벽을 넘나드는 것을 보는 일은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칸예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DONDA부터 파이렉스 비전, 오프화이트를 지나 세걔 최고의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란. 패션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의 수장의 역사를 이렇게 깊게 안다는 것은 그가 보여준 것들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명품과의 거리를 좁혀준 사람이기도 하고… 2019년 심장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비공개로 유지하다 11월 28일 시카고에서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계급, 계층, 학벌, 통념, 인종 등 다양한 장벽을 깬 크리에이터 버질은 떠났다. 어떤 생각을 했 을지 가늠이 되진 않지만, 쉴 틈없이 달려오던 그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쨋든 우리시대의 아이콘이 떠났다. 만화 같은 삶을 살았다랄까? 버질을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약 5년동안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Thanks for a lifetime of inspiration” 🕊 자신의 어린시절 영웅에게 디자이너가 되어 써준 말이지만,나중에 누군가 버질에게 써줄 말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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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커즈 아티스트 가이드
스니커즈는 이제 아트 피스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더 이상 신기 위한 기능적인 부분은 오히려 스니커즈의 의미를 저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착용 신발과 소장용 신발을 따로 사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졌으니까. 예술로서 스니커즈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댓글로 꼭 남겨주시길! 국내 아티스트먼저 다뤄보겠다! 해외는…너무 많잖아… ROIAN 로이안 / @roianx내가 유명해진다면 반드시 협업 혹은 인터뷰를 진행해보고 싶은 아티스트. 초반에는 디지털로 스니커즈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많이 하다가 점차 하드 타입으로 작업물들이 나오고 있다. (정확치는 않고…내가 봐온 바로는 이랬다.) 그중 최고는 랩핑 된 스니커즈에 아크릴 물감, 포스카 펜으로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이 아닐까? 신발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지 않고 또 다른 감성을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정말 똑똑한 아이디어인듯… 여튼 너무 팬이다. 당신도 팬이 되었으면. Rudy Lim / @rudyindahouse_오늘 소개하는 사람중에 가장 글로벌리하게 알려진 국내의 스니커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다. 몇번 뵌적은 있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에…멀리서 눈으로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업템포 올림픽 해부표본 (본인이 말하셨던) 게시물을 풋셀에 올렸던 것을 첫 인상으로 기억하는데, 찾아보니 그게 아마 첫 스니커즈 아트였던 것 같다. 역사적인 첫 작품부터 함께 봐온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 이후 나왔던 에어 조던 11 디엠피 작품은…아직도 정말 최고인 것 같다. 몬드리안도 빼놓을 수 없지… LUDOS (Kim Jae Jin) / @ludos_1990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그대로 그림에 표현되는 사람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난 그림도 잘 모르는데…?) 루도스님의 그림은 어디에 있던 그의 작품인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초창기에는 신발에 눈과 팔이 달리거나 하는 다소 기괴한 일러스트를 선보였고, 음 괜찮네 하고 지나가는 정도였지만, 최근에 그린 그림들을 보면 굉장히 밀도있는 그림들을 선보여 고퀄리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누군가의 그림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신기한 일인듯…!? 최근엔 아크릴로 만든 하드타입 작업물들도 에디션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 빠르게 품절되니… 더 뜨기전에 살수 있으면 사보도록 하자. Erik Park (Sneaker crafts) / @snkrcrafts디지털 작업물인데… 그림이 따뜻하다. 이건 그의 작업 스킬이겠지만, 감성적인 컬러감과 터치가 돋보인다. 핸드폰 케이스도 판매하셨던 것 같다. 일러스트를 주로 그리다가 최근엔 렌티큘러 프린팅, 스크래치 페이퍼도 선보이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감성적인 스니커즈 그림이 보인다면 Erik Park님의 작품이 아닐까? 그리고 이분… Nike Craft Wear Tester이다… 우여곡절 끝에 Phase 2에 참여하게 된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Test 되어져 가는 Mars Yard 1.0 신발이 보고 싶다면. @myknolling 을 팔로우 하시라. 자부심과 멋짐이 느껴진다. 비펠라 B Fella / @b_fella_국내에 스니커즈 커스텀을 하거나, 페인팅 그리고 복원을 해주는 사람들은 많다. 그 수많은 사람들과 B.Fella가 다른 점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작업물을 선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장 먼저 멋지게 해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커스텀 기법도 가장 빠르게 만나볼수 있고, 동일한 매쉬 소재를 찾아 마스야드를 복원해내는 기술력까지 그리고 팀원들과 만들어내는 여러 행사들은 우리에게 항상 즐거움을 준다. 다른 커스터마이저들과는 격이 다르게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Kim Jungyoun / @vagab문득 글을 다쓰고 정리하려고 하다가 이분은 빼먹으면 안될 것 같아서 쓴다. sneakerhead중에 가장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닐까? 심지어 나이키랑도 콜라보레이션을 했잖아! 감성적인 그림들에는 항상 HYPE한 신발이 빠지지 않는다. 일러스트도 좋고, 하드 워크도 좋지만, 최근엔 NFT쪽으로도 진출하신 것 같다. 개인적으론 이분의 수체화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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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가 베스트 5
얼마전 우리의 곁을 떠난 버질 아블로가 남긴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협업 에어 포스 1은 F&F 모델을 제외하면 아직까진 세계적인 경매사 소더비를 통해 200족이 판매되었다.해당 경매에서 최고가는 무려 약 35만 2천 달러 (한화 약 4억 2천만 원)에 낙찰된 US 5 사이즈의 1번 품목이였으며, 최저가는 약 7만 5천 달러 (한화 약 9천만 원)의 US6.5 사이즈인 11번 품목이었다.여기서 문득 지금까지 경매사를 통해 거래된 스니커즈 중 가장 비싼 낙찰가를 자랑하는 스니커즈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1. 칸예 웨스트 나이키 에어 이지 샘플예상과 달리 가장 높은 가격에 낙찰된 스니커즈는 마이클 조던의 에어 조던이 아닌 바로 칸예 웨스트의 에어 이지의 샘플 모델이다. 낙찰 가격은 약 180만 달러로 (한화 약 22억 원) 현재 프라이빗 세일에서 가장 비싼 스니커즈로 기네스에 기록이 되었다.해당 모델은 지난 2008년 칸예 웨스트가 그래미 어워즈의 무대 위에서 착용한 모델로 정식 발매된 에어 이지 1의 세 가지 컬러와는 다른 블랙 컬러를 지니고 있다.해당 경매의 낙찰자는 전 NFL 선수 제롬으로 그가 설립한 스니커즈 투자 앱인 Rares의 분할 투자 상품으로 낙찰받은 에어 이지 1 샘플을 상품으로 등록했다. 2. 마이클 조던 에어 쉽 1984년 서명 모델에어 쉽은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 1을 신기 전 착용했던 모델로 에어 조던 1 브레드(밴드)의 마케팅으로 활용했던 NBA가 금지한 신발은 사실 에어 쉽의 브레드 컬러웨이였다.해당 모델은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던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로 인하여 마이클 조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던 2021년 8월에 진행된 경매를 통해 약 147만 달러(한화 약 18억 원)의 금액에 낙찰되었던 모델이다. 1984년 마이클 조던이 경기에서 실제로 신었던 모델로 측면에는 마이클 조던의 신인 시절 서명이 적혀 있다. 3. 마이클 조던 에어 조던 1 시카고 1985년 착용 모델에어 조던 1을 상징하는 컬러 시카고 컬러웨이가 세 번째 순위를 차지했다.이 모델은 약 61만 5천 달러 (한화 약 7억 5천만 원)에 낙찰된 모델로 1985년 마이클 조던이 이탈리아에서 나이키의 스폰서쉽으로 열린 경기에서 착용한 모델이다.수많은 마이클 조던이 착용한 에어 조던 1 시카고 중에서 이 모델이 7억이 넘는 가치를 지닌 이유는 바로 이 모델을 착용한 경기 때문이다.마이클 조던은 해당 경기에서 30점의 득점을 올리면서 농구 골대를 박살내버렸고 실제로 그 일화를 소재로 만든 모델이 에어 조던 1 하이 섀터드 백보드이다. 이 시카고 모델의 왼쪽 신발 아웃솔에는 해당 경기에서 부숴진 백보드의 파편이 박혀있어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 마이클 조던 에어 조던 1 시카고 플레이어 샘플 모델연이어 에어 조던 1 시카고 모델이지만 이번 모델은 플레이어 샘플 모델이다.해당 모델은 56만 달러 (한화 약 6억 8천만 원)에 낙찰된 모델로 독특하게 신발 내부에 “850204 TYPS”라고 적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850204는 샘플이 1985년 2월에서 4월 사이에 제작된 것을 의미하고 TYPS는 신발을 제작한 한국의 동양고무산업의 약자 TS와 플레이어 샘플의 약자 PS를 합친 단어라고 한다.플레이어 샘플이기 때문에 실제 리테일로 판매된 1985년 에어 조던 1 시카고와 차이점이 몇가지 있다.샘플은 신발끈의 색이 빨간색 ? 리테일 모델은 흰색과 검은색갑피의 가죽의 질감이 다름발목의 높이가 샘플이 더 높음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마이클 조던의 서명이 있다는 것. 5. 나이키 문 슈 (1972)코르테즈가 떠오르기도 하고 와플 레이서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 모델은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 빌 바우어만이 아내가 와플을 만들기 위해 구비한 와플용 틀에 영감을 얻어 아웃솔 몰드를 제작하고 적용한 모델이다. 1972년 올림픽 트라이얼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당시의 대부분의 러닝화보다 우수한 그립과 쿠션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은 모델입니다. 경매에 출품된 모델은 오직 12족만 남은 문 슈 중 유일한 새제품 상태로 보관중인 모델이였고 낙찰가는 약 43만 7천 달러 (한화 약 5억 3600만 원)의 가격에 판매되었다.신기하게도 네 번째의 에어 조던 1 시카고 플레이어 샘플 모델과 문 슈는 모두 Shoezeum이라는 신발 박물관을 운영하는 조던 겔러의 소장품이였으며, 낙찰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Dare to Dream Automobile Museum에서 추가로 낙찰받은 다른 99족의 스니커즈를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