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일본 아메카즈의 아버지 시미즈 케이조와 니들스 스토리

2022-09-30 11:25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는 아재 개그를 던질법한 이름을 가진 브랜드가 있다. (제가 아재라..)

이들은 아메카지의 아버지 시미즈 케이조가 만든 NEEDLES.

앞서 이야기했던 브랜드들은 팔라스를 제외하고는 미국발 브랜드였다. 물론 아시아는 지금도 서양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은 K-컬처나 타국가의 패션이 유행하기도 하지만 문화의 본질은 서양에서 넘어온 것들이 다수이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간의 이야기는 아시아 브랜드로 만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여하튼.

일본이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고 동경하던 아메리칸 스타일은 투박하고 대게 러프한 스타일이 많았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몸에 맞게 또는 스타일에 맞게 변형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그 시초를 만든 것이 바로 시미즈 케이조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하며 미국의 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면서 미국풍의 제품이 일본 내에서 대유행하며 관심이 많아졌고,  Made in usa 카탈로그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의 관심은 증폭되고 국제우편으로 브룩스 브라더스 니트를 사 입는 등 미국 패션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역시 있어야 가능했던 미국 유학길을 들어서게 되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유니온 스퀘어라는 수입 신발도매회사에 취직했지만 편집샵 운영 중 문을 닫게 될 위기에 놓인다.

이때 사장은 케이조에게 새로운 전략이 있는지 물었고 케이조는 자신이 큰 영감을 받은 아메리칸 캐주얼을 컨셉으로 한 편집샵을 추천한다. 그래서 탄생한 'RED WOOD ' 편집샵은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등 운동화도 판매하고, 미국 내에서 최신 유행하는 챔피온, 리바이스, 워크웨어류 미국산 부츠를 발굴하며 인지도가 상승한다.

지금의 ABC마트나 카시나 등의 편집샵의 운영 체계와 비슷한 듯하다.

그러면서 레드우드는 요지야마모토, 쿠마가이 토키오 등 당시 탑티어 디자이너들이 애용하는 샵이 되었고, 이때 스즈키 다이키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늘 그렇듯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나면 뭐다? 새로운 사업 런칭이다.

1988년 다이키와 함께 NEPENTHES/네펜데스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지만 금전적으로 부족했기에 일본에 본사 오피스를 만들고

미국 현지에 있는 물건들을 일본으로 보내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지금이야 너무 흔한 방식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꽤나 혁신적인 부분이었다.

그렇게 보스턴을 시작으로 사업은 흥했고 1년에 약 10번 정도를 왕래하며 현지 물건을 보내다 보니 새로운 물건을 찾을 수 없게 된 케이조는 더 이상 판매할 물건을 찾지 못하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물론 다이키에게.

당시 미국에서 떼어오던 물건들은 외투, 상의, 부츠, 운동화 그리고 약간의 청바지가 전부였는데 미국인들에게 맞춰진 의류들은 사실상 키가 작고 마른 일본인들이 입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에 케이조와 스즈키 다이키는 직접 바지를 만들기로 하며, 'HOGGS '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고 상표권 분쟁이 생기며 사업을 접어야하는 상황까지 놓였지만 케이조의 제품을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다이키는 이때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케이조는 일본산 작물의 위대함을 알리고자 바늘을 모티브로 한 Needles를 런칭하게 된다. 드디어. 

하지만 첫 시작은 블레이저와 바지 등을 출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의류 브랜드였다. 이 시기에 미국에 있던 다이키의 연락이 왔다. "미국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말에 흔쾌히 승낙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는 엔지니어드 가먼츠이다.

여하튼.

이후 영화 빠삐용을 보다 나비 문신에서 영감을 받은 케이조는 이를 포인트로 한 컬렉션을 만들었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니들스의 상징과도 같아졌다.

 

그리고 우디 앨런, 제임스 테일러, 히피 문화 등을 영감받아 성장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 '모헤어 '였다.

꼰대 문화가 싫었던 케이조는 윗세대들에게 저항하는 자세를 가졌는데 자연스럽게 펑크와 히피 문화에 빠졌고 거기서 익숙한 앙고라토끼 재질의 의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앙고라의 특성이 털이 심하게 날린다였고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염소를 활용한 모헤어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식 아메카지의 시초 벌룬 팬츠는 말해봤자 입만 아픈 수준이다.

이렇게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며 꾸준히 발전한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며 콜라보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닥터마틴, 반스, 리복, 에이셉라키의 레이블 AWGE 등과 작업하며 아메카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현재의 니들스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콜렉션, 콜라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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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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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칸예 웨스트 그 다음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마이클 조던과 칸예 웨스트 그 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바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자, 스니커즈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두 명이다.마이클 조던은 1985년부터 지금까지 에어 조던이라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시그니처 농구화를 시작으로 브랜드로서의 조던을 만들어내었고칸예 웨스트는 2009년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선보이고 나이키의 에어 이지를 시작으로 이제는 아디다스 이지 시리즈, 그리고 이지 갭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그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최근엔 좀 사이가 안 좋긴 하지만…?) 1980년~2000년대 대중은 스포츠에 열광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전 세계인들의 축제였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선수들은 우리들의 우상이였고 닮고 싶은 롤 모델이였다.(박세리 맨발 투혼은 못 잊지) (2002 월드컵 때 태어났으면 지금 21살인거 실화..?) 그리고 2010년대로 넘어와서 우리는 힙합이라는 문화가 주류 문화로 떠오르는 순간을 경험했다.(참 명곡 많은 형들)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여러분들이 바로 와닿을 국내 스타들로 예시를 들었지만, 이건 전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였고 그 중심에는 바로 마이클 조던과 칸예 웨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들이 바로 스니커즈 문화를 이끈 2명의 트렌드세터였다. 그리고 2020년대로 넘어와서는 과연 한 명의 슈퍼스타가 전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점점 고립되고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소통을 시작한만큼 우리는 지금 여기 한국에 있더라도 일본에 있는 친구 혹은 저 멀리 미국에 있는 친구와 늘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SNS가 등장했다.SNS는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보여주고 그리고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만 어울리게 만드는 즉 끼리끼리 문화를 확산시켰다. 우리를 계속해서 한 쪽 방향으로만 몰아가며 이는 확증편향이라는 현상으로 서로 공감하지 않고 오히려 양극으로만 치솟은 다툼만을 야기시켰다. 또한 최근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누구는 넷플릭스에서 수리남을 보았고 누구는 티빙에서 환승연애를 보았다면서 각자 보고 있는 콘텐츠를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게 되는 현상을 자주 겪었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왓챠 같은 OTT 시장이 다양하고 커졌지만 이를 사용하는 유저들은 서로가 분산되면서 소비하는 콘텐츠가 달라지고 이는 하나의 큰 트렌드가 아닌 자신이 선호하는 콘텐츠만 소비하는 성향이 강해진만큼 대중을 하나로 모으기 어려운 현상을 만들고 있다. 즐기는 순간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판데믹 시대를 넘어 엔데믹 시대를 향한 지금 오히려 세상은 판데믹때보다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은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풀었던 달러를 다시 회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이 흐름은 2023년에도 그대로 지속적인 흐름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크다. 또한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지속 중이고 이제는 동원령까지 발표할 정도로 그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다.거기에 덮친 이상기후로 인해 대중은 신발이나 명품 의류 같은 고가품에 대한 관심보다 당장 먹고 살아야할 문제가 커지고 있다. 문화가 아닌 돈만 남은 스니커즈 컬쳐 이 부분에서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리셀이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고 비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리셀 시장이 있기에 문화가 성장하였고 다양한 행사가 생겨났고 우리가 이렇게 신발에 대해 소통을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바로 특히 한국에서 그 성향이 심해지고 있는데 바로 신발을 오직 돈으로만 보는 문화를 비판하고 싶다.Stock X, 크림, 솔드아웃을 비롯한 한정판 거래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스니커즈 시장은 더이상 마니아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버렸다. 서울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범고래를 물으면 동물이 아닌 덩크 로우 블랙로 답을 할 것이고 조던을 물으면 마이클 조던이 아닌 비싼 신발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필자도 경험했던 일인데 2019년 당시에는 신발의 1도 관심없던 지인들이 오랜만에 2021년 만나니 어느새 나에게 먼저 트래비스 스캇 조던 이거 언제 팔아야 되냐? 라고 먼저 물을 정도로 한정판 거래 플랫폼으로 인해 리셀 시장은 대중화가 되었다. 하지만 리셀 시장 대비 스니커즈의 문화적인 시장은 성장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가격만 궁금하고 정가에 구하는 방법만이 궁금할 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이런 부정적인 내용만 줄 순 없지! 이제 긍정적인 부분을 한번 알아보자. 하나 둘 씩 등장하는 넥스트 조던 & 칸예여전히 스포츠는 대중문화를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 점에서 조던 브랜드는 자이언 윌리엄슨, 루카 돈치치를 비롯한 차세대 스포츠 스타들과 계약하였고 얼마 전 공개되었던 나이키의 50주년 기념 영상을 통해서도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듯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차세대 스타가 탄생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그리고 현재 가장 잘나가는 힙합 스타인 트래비스 스캇은 여전히 나이키, 조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본인의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고 그의 브랜드 캑투스 잭은 맥도날드부터 디올까지 모든 영역의 브랜드와 협업하는 가장 핫한 브랜드가 되었다.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시장의 영역최근 나이키는 RTFKT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메타버스를 위한 스니커즈 나이키 덩크 제네시스를 선보였다. 다양한 외형을 입힐 수 있는 디지털 아이템으로 그 가치는 1족당 수 백만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외에도 가상 현실과 현실 모든 곳에서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의류와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아디다스 역시 BAYC라는 NFT 프로젝트와 협업하여 지난 12월 Into the Metaverse라는 컬렉션을 선보였고 지속적으로 현실에서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될 것을 공지했다. 이런 영역에서 트렌드를 대표하는 스타의 탄생도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문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물론 돈만 남았다곤 했지만 여전히 스니커즈 문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키의 최신 리테일 컨셉 스토어 이 세계 최초로 서울 홍대에서 오픈하였고다들 알고 있을 국내 스니커즈 대표 유튜버 와디의 신발장의 와디님이 운영하시는 최근 종로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한정판 신발을 신어보고 대여까지 할 수 있는 카페 국내 유일의 스니커 컨벤션 스니커하우스 그리고 신발을 칩으로 교환하는 오프라인 스토어 칩스를 운영하는 이외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스니커즈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분들이 우리의 곁에 많이 있다. 마이클 조던 그리고 칸예 웨스트를 넘어설 새로운 차세대 스타는 과연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만약 등장한다면 어떤 영역에서 등장할지 기다리며 이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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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올 수 없는 삼각의 매력을 가진 Palace
뭐지 저 삼각형 일루미나티도 아니고.어느 순간부터인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유난히 사람들은 세모에 집착하는 성향들이 있는데 안정감 때문인지 삼각으로 된 것이 많다. 삼각김밥, 삼각팬티, 삼각 쿠션, 삼각지..서론이 길었지만 오늘 이야기할 브랜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스트릿 웨어로 자리 잡은 \'Palace\'다.이들은 영국 런던 태생의 브랜드이며 디렉터는 레브 탄주(Lev Tanju)라는 스케이터이다.앞서 이야기했던 브랜드 디렉터들은 대개 스케이터나 서퍼들이 많은데 스트릿 브랜드라는 하나의 장르는 자유분방함을 표방하기 때문인가 싶다.서브컬처인 스케이트나 서핑은 판때기 위에 내 몸 하나로 지탱하는 놀이이고 수없는 도전과 실패를 겪는 인생과도 같은 면을 찾을 수 있다.(너무 진지했나..)여하튼레브 탄주는 사우스뱅크 인근의 공원에서 매일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 스케이트에 맞는 활동성이 좋으면서 스타일리시한 옷이 없다고 느꼈다. 물론 슈프림도 존재했지만 그 당시의 런던에서도 슈프림의 인기는 많고 가격도 높아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슈프림과 같은 스트릿 웨어 브랜드를 만들고자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를 설득하면서 브랜드는 시작하게 되었다.이때 지금의 로고를 만든 이는 잘나가는 디자이너 마크제이콥스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퍼거스 퍼셀(Furgus Purcell)이다.돈 많이 줬을 것 같다.스웨덴의 그래픽 아티스트인 오스카 레우테르스뵐드가 1934년에 고안했던 펜로즈 삼각형에서 착안해 로고를 제작했다고 하는데요.영원히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디자인은 영원을 뜻한다고 한다.이렇게 시작된 팔라스는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고 영국 내에서 성공적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팔라스가 런칭하고 스케이트 문화에 정착하고 있을 당시에 리복이 팔라스에 먼저 손을 내밉니다. 그렇게 출시된 보드화 라인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이렇게 승승장구하는 팔라스의 레브탄주는 일반적은 스트릿 브랜드보다 자국의 요소를 여러 가지로 잘 살렸다. 영국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많은 것들이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나라 선수들도 있는 바로 축구이다. 꼭 EPL만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하기도 했던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팔라스의 디자인에 녹여내니 자국 내에서 안되려야 안될 수가 없다. 매번 대박을 내던 팔라스는 타 지역까지 매장을 오픈하고 소위 말하는 \'월클\'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무엇이 있을까. 역시나 우리가 아는 대박 나는 콜라보레이션이 이어졌다.트리커스, 엘튼존, 벤츠 AMG, 크록스,CK, 리복, 스타터, 뉴발란스, 엔지니어드 가먼츠, 아디다스, 카파, 반스 등 많아도너무 많다.그 중https://youtu.be/LBFolCVF42k벤츠 AMG맥주 스텔라곧 있으면 출시될 뉴발란스 580출시되자마자 품절된 E.G요즘 힙하디 힙한 아크테릭스아디다스 X 유벤투스 X 팔라스 그리고 진짜 리얼대박사건인 캘빈클라인과의 콜라보였다.메이저 브랜드와의 콜라보는 다양하고 많을 수 있지만\'패션\'브랜드와의 콜라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네임밸류가 올라가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그리고 CK와 같이 월드 와이드는 더더욱이나 그러하다.결과적으로 둘의 협업은 서로에게 윈윈이 되었다. 누구 하나 손해 보는 것 없이 대박이 난 것이다.앞으로도 좋은 콜라보/컬렉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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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우리가 만났던 10개의 마스터피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17년 9월 우리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협업을 만났었다. 단순히 1개의 신발 협업이 아닌 마치 한 명품 브랜드의 시즌 컬렉션이 떠오르는 10종의 스니커즈 협업 바로 오프화이트와 나이키의 “THE TEN” 컬렉션이다.버질 아블로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나이키와 함께 성장하여 지금 협업을 할 수 있던 것처럼 모든 분야에는 기성세대가 배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젊은 세대가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 협업을 통해 다시 한번 나이키의 역사와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미래의 누군가가 더 큰 무언가를 가져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중점으로 두었다고 “The Ten” 컬렉션에 대해 설명했다.“Ten Icons Reconstructed”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신이 나이키가 지닌 유산 중 10개의 아이콘을 선정했고 이를 재구성하는 것이 “The Ten” 컬렉션의 핵심 테마였다. 그리고 선정한 10개의 아이콘을 다시 두 그룹으로 나누었고, 두 그룹은 바로 “REVEALING”과 “GHOSTING”이다.REVEALING- 에어 조던 1- 에어 맥스 90- 에어 프레스토- 에어 베이퍼 맥스- 블레이저 미드REVEALING은 신발이 지닌 근본적인 디자인 미학은 유지하면서 해체주의적 요소를 반영한 그룹이다. 버질 아블로는 신발 디자인에서 핸드메이드적인 요소를 넣고 싶어하였고 그 결과 보다 과장된 스우시, 드러나는 내부 스폰지와 같은 디테일이 탄생하였다. 에어 조던 1 : 찬란한 유산이자 스니커즈의 성배 그리고 사람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신발 에어 맥스 90 : 더욱 커진 에어 유닛이 우리를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만든 신발에어 프레스토 :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그리고 현대적으로 표현한 누구나 편하게 신는 신발 에어 베이퍼맥스 : 에어의 경이로운 미래를 시작한 신발 블레이저 미드 : 유행이라는 것에 속박되지 않는 영향력을 지닌 신발 GHOSTING- 척 테일러- 줌 플라이 SP- 에어 포스 1 로우- 하이퍼 덩크 2017- 에어 맥스 97GHOSTING은 단순히 신발의 색만 바꾸는 협업이 아닌 신발의 근본적인 실루엣으로 돌아가 반투명한 레이어를 덧대고 오프화이트 특유의 텍스트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흰색과 검은색을 활용한 심플하면서도 심오한 의미를 담았다. 컨버스 척 테일러 : 저항을 상징한 가장 원초적인 신발 줌 플라이 : 속도의 한계에 도전하는 역학의 정수를 담은 신발 에어 포스 1 로우 : 하나의 문화를 대표하는 경쟁력을 표현한 신발 하이퍼 덩크 2017 : 에너지 그리고 임팩트, 혁신의 게임 체인저 에어 맥스 97 : 가장 아름다운 윤곽선을 지닌 패션의 아이콘 버질 아블로가 1990년대에서 가져온 영감을 통해 나이키의 10 가지 아이콘을 재구성하면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도구는 바로 X-ACTO 나이프. 프라모델을 하거나, 미술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트 나이프라는 단어로 좀 더 익숙한 도구인데, 2016년 10월 나이키와 첫 번째 미팅에서 버질 아블로는 눈 앞에 있던 에어 포스 1 로우 블랙을 X-ACTO 나이프로 해체하고 다시 만들면서 마커를 활용해 레터링을 새기면서 “The Ten” 컬렉션의 초석을 다듬었다. 그는 10개월이란 시간에 10개의 신발을 완성했고 이는 나이키가 진행한 협업 중 가장 빠르게 완료한 협업 중 하나라고 한다. 아이디어 구상은 3시간 만에 끝났지만 디자인과 반복 작업에는 2~3일씩 걸렸다고 하는데, 하나의 신발이 만들어지기 까지 수많은 디자인 세션이 진행되는 걸 감안하면 10개월에 10개의 신발을 완성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작업 속도였다고 생각된다. 2019년 MCA 시카고 그리고 현재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Figures of Speech’ 전시회에서 “The Ten”이 되지 못한 샘플들의 모습들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보이는 일부 수량만 봐도 버질 아블로가 얼마나 많은 작업량을 단시간에 진행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또 하나의 “The Ten” 컬렉션이 있는데, 바로 프라그먼트 디자인 후지와라 히로시의 “The Ten” 컬렉션이다. 컴플렉스 콘에서 제프 스테이플이 호스트로 진행했던 ‘The Art of Collab’ 세션에 게스트로 참여한 후지와라 히로시는 “The Ten” 컬렉션의 최초 구상 컨셉이 버질 아블로와 후지와라 히로시의 대결이였다고 설명했다. 후지와라 히로시는 자신의 “The Ten” 컬렉션 중 일부 스니커즈를 공개했는데 자신이 직접 착용하고 있던 삼중 벨크로가 적용되고 측면 스우시를 제거한 에어 포스 1 하이, 에어 프레스토의 이너 부티를 재구성하여 적용한 에어 포스 1 로우, 플라이 와이어를 적용한 코르테즈, ACG 스타일의 에어 맥스 1을 선보였다. 그리고 후지와라 히로시만 착용했던 에어 조던 3 샘플 또한 “The Ten” 컬렉션 중 하나였다고 스니커 마니아들은 짐작하고 있다. 물론 이후에 실제로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에어 조던 3가 발매되었지만 샘플 모델 만큼의 임팩트를 주진 못한 것 같다. 후지와라 히로시는 자신의 “The Ten” 컬렉션이 언젠가 미래에 나올 수 있다고도 말을 전했다. 다시 버질 아블로의 “The Ten” 컬렉션으로 돌아가자면, “The Ten” 컬렉션 이전의 협업은 단순히 색놀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느껴질만큼 협업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정의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실제로 그는 “The Ten” 컬렉션 이후 오프화이트의 수장을 넘어 루이비통의 멘즈 아티스틱 디렉터를 겸업했으며, 루이비통과 나이키의 협업 에어 포스 1까지 이뤄내는 수많은 성과를 달성한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였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아쉽게도 버질 아블로는 더이상 세상에 없지만, 다시금 누군가가 버질 아블로의 뒤를 이어 세상에 새로운 협업을 선보이는 날이 다가오길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