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gil was here
2021-11-30 19:5111월 29일 7시에 일어나 어느때처럼 인스타로 놓친 소식이 없는지 보던 그때, 믿을 수 없는 포스팅들을 보았다. 아침잠이 확 달아나는 순간. 약 3일간은 조금 가슴이 먹먹했던 것 같다. 야속하지만, 버질 관련 제품들의 가격은 폭등했고, 수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물론 가격에 대한 글은 오늘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니까.
그는 단순한 패션 디자이너로 기억되지 않을 것 같다. 패션계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크리에이터였기 때문이겠지. 유명인의 부고 소식을 유려한 글로 표현해내는 The New York Times 트위터는 버질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그를 표현했다.
“Virgil Abloh, the barrier-breaking Black designer”
장벽을 허문 흑인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그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과연 어떤 장벽들을 허물었는지 보자.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짧은 그의 역사는 깊은 울림을 주기에.
DONDA
칸예와의 우연한(?)만남으로 2009년 명품 브랜드 Fendi에서 함께 인턴 생활을 하며, 많은 교감을 이루었던 것 같다. 이후 칸예의 에이전시 DONDA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차지한 뒤, 2011년 Kanye 와 Jay Z의 Watch The Throne 아트 디렉터로서 그의 재능을 표출한다.
2012년 그래미 어워즈 Best Recording Package 부분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은 그의 아트 디렉팅 능력이 벌서 완성단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Pyrex Vision
2012년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런칭한다. 모두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미국의 Champion 브랜드의 후드, 반팔, 져지, 쇼츠와 같은 기본 제품군과 Ralph Rauren의 럭비 라인 셔츠를 염가에 구입해 독특한 나염과 라벨을 새겨 제품들은 생산했다. 염가로 샀지만, 판매가격은 550달러 선이었던…웃픈… 제품이었고, 당시 패션계는 이런 그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기존 패션계를 비웃는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1년이 채 가지 않고 회사는 문을 닫는다. 상업적 기업이라기 보다는 예술적 실험을 의도했다는 말이 전해지지만, 미국의 내열 유리 식기 회사 Pyrex와의 소송도 한 몫 한 것 같다는 의견도…크흠
그의 옷에 매번 새겨진 PYREX와 숫자 23!, PYREX의 뜻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23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아는 마사장님을 표현하는 숫자가 맞다고 한다. 이때부터 버질은 조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던 것 같다.
OFF-White
2013년 OFF-White가 설립된다. 오프화이트를 인터넷에 서치해보면 고급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라 소개된다. 고급 스트릿웨어라니, 거기다 본사는 이탈리아 밀라노. 기존의 관행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첫 출발이었다
오프화이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프화이트의 철학.
“Defining the grey area between black and white as the color Off-White”
“흑과 백, 그 사이의 회색 영역을 오프 화이트라 정의한다.”
이라는 한 문장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영역 중간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 버질 아블로의 브랜드. 오프화이트는 이후 파격적인 행보로 스트릿 패션계의 하이앤드 포지션을 차지하며 씬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오프화이트 이후로부터 버질은 점점 디자이너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2015년 LVMH Prize의 최종 후보중 한명으로 거론되었고 (유일한 미국인 디자이너).
2017년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에서 어반 럭스상을 수상 또한
GQ에서 올해의 국제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7년 우리에게 가장 진한 기억을 주는 그 컬렉션 The Ten이 탄생한다.
물론 나이키의 상징과 같은 10가지 제품으로 이루어진 컬렉션이고,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오프화이트였지만, 당시는 조금 생소했을 수도 있다. 이상한 케이블 타이와 헬베티카 폰트의 굵은 대문자 레터링, 그리고 큰 따옴표는 조금 생소했다.
스니커즈 씬은 반응했고, 결과는 미친 대성공. 매장 앞에 도열한 스니커 매니아들을 아직도 난 기억한다.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줄서기 이벤트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인식시킨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다. 초기엔 주춤했던 리셀가가 하늘로 고공행진…
이후 이케아와 에비앙, 바이레도, 리모와 등등…(심지어 모엣 샹동까지) 엄청난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선보였고, 거의 대부분 모든 것들은 성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당시 기존 창조물에 3%의 변화만 줘 새 디자인을 만든다는 3%접근법을 소개하고 전파하며 논란이 되었지만, 그 3%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변화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Louis Vuitton
2018년 3월 25일 드디어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 일이 일어난다. Louis Vuitton의 남성복 레디웨어 라인의 아트 디렉터로 임명되어 루이비통의 지휘를 맡은 몇안되는 흑인 디자이너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8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버질 아블로의 데뷔 런웨이에서 칸예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을 잊지 못하는 장면 중에 하나이다.
이후 약 3년동안 버질이 여러 장르의 벽을 넘나드는 것을 보는 일은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칸예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DONDA부터 파이렉스 비전, 오프화이트를 지나 세걔 최고의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란.
패션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의 수장의 역사를 이렇게 깊게 안다는 것은 그가 보여준 것들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명품과의 거리를 좁혀준 사람이기도 하고…
2019년 심장 혈관육종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비공개로 유지하다 11월 28일 시카고에서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계급, 계층, 학벌, 통념, 인종 등 다양한 장벽을 깬 크리에이터 버질은 떠났다. 어떤 생각을 했 을지 가늠이 되진 않지만, 쉴 틈없이 달려오던 그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쨋든 우리시대의 아이콘이 떠났다. 만화 같은 삶을 살았다랄까? 버질을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약 5년동안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Thanks for a lifetime of inspiration” 🕊
자신의 어린시절 영웅에게 디자이너가 되어 써준 말이지만,
나중에 누군가 버질에게 써줄 말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