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이 아름다운 이유
2022-04-17 21:044월 15일 THE KOREAN ZOMBIE 정찬성의 아름다운 타이틀 도전이 패배로 막을 내렸다. 경기 이전부터 패배를 점쳐왔지만, 국내외 팬들의 마음엔 언더독 입장인 좀비의 승리를 은근 기대하는 의견도 있었던 것 같다. 결과는 패배였고 쓰라렸다. 은퇴를 시사하는 듯한 인터뷰를 남겼지만, UFC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가 은퇴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고? 재미없어지니까. 도전하지 않는 스포츠는 재미가 없다. 이변도 없을 것이고, 레스터 시티가 2015년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했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스토리도 없을 것이다. 스포츠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볼카의 완벽한 경기력과 아름다운 패배를 했던 정찬성의 경기에서 스니커씬도 저러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완벽한 시장점유율의 나이키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아름다운 언더독들.
언더독이 있어야 시장은 재미있다. 다만 좀비처럼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면 경기장 어디선가 들려오는 연호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다시 챔피언에 도전해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르지. 오늘은 굳건한 탑독 나이키에 도전하는 여러 언더독 브랜드들의 스니커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스니커즈들이 언젠가 나이키의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철저한 내 주관에 기대어 써지는 글이니 너무 비판은 말아주라. ㅜ
아디다스
아니 요즘 아디다스를 보고 있으면 애잔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것 같다. 아디다스 오리지널 라인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고, 이지 브랜드가 하입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추락한거지? 만년 2등이었던 스포츠 브랜드 순위도 요즘은 뉴발란스에 자리를 내어주며 브랜드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단순히 스니커즈 씬에 국한된 이야기이므로 가볍게 넘어가자.)
하지만 아디다스가 가져온 1990년대의 클래식 보드화 ADIMATIC은 시장에서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아디다스에도 헤리티지 라인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더 이상 나이키 덩크를 보드화로 신는 사람이 없듯이 1990년대 보드화로 제작됐던 아디메틱 또한 2022년대 훌륭한 라이프스타일화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뭉툭한 실루엣에 어울리는 두꺼운 끈은 그 시절 우동 끈이 생각나는 듯해서 반갑기도 하다.
그리고 이지 브랜드에서 꺼낸 YEEZY BOOST 350 “터틀 도브” 리스탁 카드는 꺼져가는 이지의 하입에 다시금 긴장감을 줄 것 같다. 물론 다시 나올지 안 나올지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말이지. 지금까지 절대로 안 내주던 녀석들의 리스탁 소식이 전해진다는 것은 브랜드에 위기감이 어느 정도 엄습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 과연 모두에게 이지를 신겨주고도 브랜드 하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뉴발란스
요즘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인 것 같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정면 돌파하면서 씬에서 인정받는 뉴발란스는 요즘 협업부터 일반 GR까지 뭐하다 빼놓지 않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키의 자리를 위협하는 유일무이한 대항마가 아닐까? 물론 브랜드 파워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충분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한 방, 두 방 멋지게 꽂아 넣다 보면 언젠가 KO도 낼 수 있을 것 같다.
327, XC-72, 237 멋진 GR 제품들을 내놓았지만, 난 이처럼 아름다운 GR 제품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처음에 보고 ‘PROTECTION’ 이라는 브랜드가 있는 줄 알았으니까. 2021년 7월에 출시된 세 가지 PROTECTION PACK 제품들은 초창기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으나, 점점 입소문을 타더니 대중들이 2002R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이후 나오는 다른 2002R 제품들도 이 제품 덕택에 연이어 매진되고 있는 상황. 물론 최근 리스탁으로 시장 가격은 안정되고 있지만, 이 제품 신고 나가면 안 이쁘다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협업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에서 나온 일반 제품이 이 정도 퀄리티로 나올 수 있는 브랜드는 정말로 몇 없을 것 같다. 최근 폼 좋은 뉴발란스를 한 제품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아마 이 제품이 아닐까?
그리고 최고의 헤리티지를 보여주고 있는 뉴발란스의 900대 시리즈…3년 전 990을 광고할 때 사용했던 “Worn by supermodels in London and dads in Ohio” 라는 카피가 지금 뉴발란스의 현 상황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다. 아빠들이 신던 dad shoe를 슈퍼 모델들이 신고 다니는 스니커즈로 만든 뉴발란스. 992의 귀환에 다른 99x 제품들의 하입이 올라간 것 같지만. 이는 절대로 우연이 아닐 것이다. 992가 돌아왔다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99x 시리즈에 협업 제품들을 끼워 넣으며 시선을 돌리게 만든 뉴발란스의 마케팅 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 아닐까? 헤리티지부터 디자인까지 뭐하나 놓치지 않는 뉴발란스의 대표 스니커즈로 최고의 언더독 스니커즈가 아닐까?
아식스
“아식스 한번 신으면 다른 신발 못 신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인에게 가장 잘 맞는 스니커즈를 만드는 브랜드 아식스는 이제 더 이상 편안하기만 한 엄마의 신발이 아니다. 그 옛날 나이키가 블루리본 스포츠였을 시절 오니츠카 타이거의 커세어가 나이키의 대표 모델 코르테즈로 탄생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일 정도로 충분히 아식스에도 헤리티지가 존재한다.
협업을 진행했던 키코가 이제는 파트너십을 체결해, 디자인 큐레이션을 도맡아 하며 도발적인 스니커즈들을 씬에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젤버즈의 대란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니 무슨 러너가 이렇게 가격이 올라…? 라고 했지만 인스타그램에서 키코의 젤버즈를 신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난 신알못이야…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키코도 키코지만 아식스가 국내 디자인 레이블에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제품들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아식스의 하입을 제대로 알린 IAB STUDIO x Asics 젤 벤처 6는 출시 당시 보다 지금 더 주목받는 느낌이다. 그리고 최근엔 기리보이의 I4P와도 젤 1130 제품을 전개하는데, 이 또한 지금 패션씬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비단 기리보이의 덕분만이 아닌, 아식스가 보여주는 러너 스타일이 충분히 패션에서 먹힌 다는 것 아닐까?
푸마
이렇게 꾸준한 브랜드가 있을까 싶다. 탄탄한 내구성과 뛰어난 접지력 그리고 스트릿 댄스, 스케이트 보딩, 힙합을 아우르는 서브컬쳐 전반에 퍼져있는 푸마의 아이덴티티는 스웨이드 모델로 대표된다. 세상에 나온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간결한 로고와 단순하면서 편한 스니커즈는 클래식은 시간이 지나도 영원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지금 씬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분명히 그 위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스웨이드 라인은 꾸준하게 뽑아내면서 푸마가 보여주려는 또 다른 움직임은 협업이다. 파리 특유의 심플한 감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AMI와의 협업을 지속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Maison Kitsune라는 요망한 여우와도 협업을 보여주고 씬에 스멀스멀 스며들어오고 있다. 그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은 국내의 컨템포러리 무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ADER ERROR”와 보여줬던 베이더론 두 가지 제품이 아닐까? 진짜 간만에 클래식 말고 푸마가 이 정도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제품인 것 같다. 이전에 전개했던 RS-1 제품보다 뛰어난 디테일과 클래식한 컬러감으로 멋진 한방을 날렸던 것 같다.
리복
정말 이렇다 할 리복의 스니커즈는 없지만, 2020년 강혁과 보여줬던 프리미어 로드 모던 화이트 레드 제품의 강렬함은 잊을 수 없다. 리복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러너가 나올 수 있다니!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의 스니커즈들이 주였던 리복에 이런 러너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들개 했던 것 같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던 모델로 기억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동안 리복의 스니커즈 씬에서의 정체성은 단정하고 깨끗한 CLUB C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클럽C의 범용성은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2022년 CLUB C 보다 주목받은 두 브랜드가 있었다.
세가지 모델 모두 테니스 코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디자인의 유사성은 나중에 다루도록 하고… 여튼 이런 깔끔한 레더 스니커즈가 씬에서도 다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탑독과 언더독으로 이야기 해본 스니커즈 이야기. 그냥 나이키의 독주가 더 이상은 재밌지 않기에 다른 브랜드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써보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언더독이 탑독에게 멋지게 한방 먹이는 장면을 보기엔 어려워 보이지만. 언젠가 순위가 뒤집히는 날 분명 오늘 소개한 브랜드 중에서 하나가 그 주인공이 아닐까? 빼먹은 브랜드가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길!
언더독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 씬이 재밌으니까.
PS 찬성이형의 멋진 펀치 또 다시 볼 수 있길!